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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

Posted December. 26, 2017 08:32   

Updated December. 26, 20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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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때 ‘스켈레톤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3·라트비아)는 난데없는 국제전화 세례에 시달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핑 규약을 위반한 러시아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의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금메달 박탈을 결정하면서 두쿠르스가 금메달을 받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휘슬러에서 만난 두쿠르스는 ‘뒤늦은 금메달의 소감’을 묻자 “올림픽 그 순간의 감격을 겪지 못해 엄청나게 기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늦어도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두쿠르스는 11월 초 미국 레이크플레시드에서 열린 시즌 첫 월드컵을 금메달로 시작했지만 미국 파크시티에서 열린 2차 월드컵부터 ‘한국 스켈레톤의 희망’ 윤성빈(23·강원도청)에게 밀렸다. 휘슬러 3차 월드컵에서는 6위까지 밀려났고 독일 빈터베르크 4차 월드컵까지 왕좌를 윤성빈에게 내줘야 했다. 하지만 16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5차 월드컵에서 윤성빈의 4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정상에 오르며 자신의 통산 50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8년 첫 월드컵 우승 후 두쿠르스는 10년 가까이 세계 스켈레톤을 지배했다. 이제껏 치른 79차례 레이스 중 우승이 50차례, ‘톱 3’만 66차례나 된다.

 두쿠르스는 “50승은 정말 특별한 숫자다. 우리 가족은 스켈레톤을 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계속 한걸음씩 올라오면서 나름의 목표를 세워왔지만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 했다. 이제 우리는 놀라운 팀이 됐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았으면 이룰 수 없는 결과다”라고 말했다.

 투쿠르스는 친형 토마스(36)도 2003년 라트비아 시굴다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켈레톤 가족’ 출신이다. 세 살 터울의 두쿠르스 형제는 라트비아 시굴다에서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랐다. 현재 시굴다 트랙의 관리자인 아버지 다이니스 두쿠르스는 “1994년 이 트랙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두 아들 모두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을 타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썰매에 눕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할수록 점점 더 잘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느덧 두쿠르스 삼부자는 라트비아 스켈레톤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국제무대에는 형이 먼저 데뷔했다. 하지만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건 동생이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동생은 휴학 후 나선 첫 올림픽을 7위로 마쳤다. 이후 두쿠르스 삼부자는 본격적으로 월드컵 투어에 나서기 시작했다.

 마르틴스는 “우리 둘 사이에 비밀은 없다. 우리가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좋은 라인을 찾거나 레이스 도중에 실수를 하면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다. 토마스 역시 “처음에는 가족들이랑 함께 대회에 나가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동생과 함께 경쟁하며 더 나은 선수가 되도록 서로 계속 자극을 줄 수 있다. 물론 내가 동생을 이기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게 지는 것보단 동생에게 지는 게 조금 덜 아프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라트비아의 국민 영웅인 마르틴스 두쿠르스는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개막식 기수로 나섰다. 두쿠르스는 당시 올림픽 1차 시기에서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트랙 레코드(52.32)까지 세우며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이미 1차 시기에 2위 캐나다 존 몽고메리보다 0.28초나 앞섰다. 하지만 두쿠르스는 2차 +0.02초, 3차 +0.08초, 4차에서는 0.25초나 뒤지며 역전패했다. 이후 두쿠르스는 본격적인 ‘황제’의 길을 걷게 됐다. 2010∼2011시즌 5차례, 2011∼2012시즌 7차례, 2012∼2013시즌에는 8차례 월드컵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쿠르스는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2013∼2014시즌에도 6차례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이 시즌에는 마르틴스-토마스 형제가 차례로 세계랭킹 1, 2위를 차지했다.

 소치 올림픽에서 두쿠르스는 러시아 도핑의 피해자가 되면서 다시 은메달에 머무르게 됐다. 당시 두쿠르스는 “나는 4차 시기 모두 내 최대치를 뽑아냈다. 기술적으로도 좋았고 썰매도 최고의 상태였다. 아마 내 스타트가 좀 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만큼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알렉산드르(트레티야코프)가 그냥 오늘 더 잘한 것이다”고 깔끔하게 승복했다.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라트비아에서는 ‘영웅’을 기리기 위해 2014년 3월 두쿠르스의 얼굴을 넣은 우표까지 출시됐다.

 두쿠르스는 올 2월 평창에서 8년 연속 세계랭킹 1위 타이틀 방어에도 성공했다. 올 11월에는 ‘러시아 도핑 파문’으로 다소 늦긴 했지만 자신의 완벽한 커리어에서 딱 하나 빠져 있던 올림픽 금메달까지 뒤늦게 완성했다. 두쿠르스는 평창에서 스켈레톤 역사상 첫 올림픽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최국에 있다. 스켈레톤은 트랙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두쿠르스는 2월 방한했을 때 “윤성빈 역시 홈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일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 도전이 이번에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속내를 내비쳤다. 하지만 두쿠르스는 “올림픽 2연패는 도전할 만한 일”이라며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했다.

 윤성빈은 이들이 보내는 ‘경계의 눈초리’를 몸소 느끼고 있다. 윤성빈은 “그 집안사람들(두쿠르스 형제와 아버지) 빼고는 경기장에서 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요(웃음). 특히 아버지는 저랑 눈도 안 마주치세요. 올림픽 지나면 좀 풀리겠죠?”라며 웃었다.

 열 살 차이가 나지만 둘의 ‘세기의 라이벌’ 구도는 한동안 오래 지속될 듯하다. 두쿠르스는 “마흔이 넘어서도 우승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윤성빈 역시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제 둘은 새해 1월 5일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이번 시즌 6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현재까지는 윤성빈이 우승 3차례, 준우승 2차례로 두쿠르스(우승 2차례, 준우승 2차례)에 앞서 있다. 과연 누가 평창에서 자신의 국기를 더 높은 곳에 걸 수 있을까.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