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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클레지오의 ‘서울’

Posted December. 16, 2017 08:32   

Updated December. 16, 201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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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에게 1968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설국’의 첫 대목. 작가는 니가타현 산간 지방의 온천마을 유자와에 머물면서 이곳을 무대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미국 현대문학의 지형도에 작가 이름을 각인시킨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에 나온 구절이다. 이 소설뿐 아니라 숱한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통해 대도시 뉴욕은 한층 더 휘황한 광채를 자랑한다.

 ▷세계적 소설가가 서울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의 ‘빛나: 서울 하늘 아래’란 작품. 그는 2001년 첫 방한 이후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한국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은 작가다. ‘빛나’는 한국을 배경 삼은 그의 두 번째 작품. 프랑스판에 앞서 한글 번역판이 최근 선보였다. 분단현실 전통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아우른 소설에는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 르 클레지오는 안국동 신촌 오류동 우이동 등 작품 속 무대를 지하철과 버스 등을 타고 직접 누볐다고 한다. 노작가의 내공이 담긴 신작이 높은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지구촌에 서울의 내밀한 매력을 알리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요즘은 국가보다 도시경쟁력을 내세우는 시대. 이번 소설에 따르면 ‘서울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가는 ‘고층 건물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최악으로 꼽은 반면, 아직 남아 있는 골목의 일상과 마당에 야채를 심어 먹는 정겨운 풍경을 매력으로 지목한다. 르 클레지오가 사랑하는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인간의 정취가 살아 숨쉬는 도시다. 우리들이 꿈꾸는 서울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