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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악명의 대결이 남긴 것

Posted August. 29, 2017 07:08   

Updated August. 29, 201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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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는 아무 것도 아니다. 권투가 전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말이다. 권투를 워낙 좋아해 글쓰기보다 권투에 투입한 시간이 더 많을 거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1920년대 파리 체류시절 다른 작가와 정기적 스파링을 했고 그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는 경기시간을 재는 역할을 했다.

 ▷프로권투 중계방송을 보는 것이 큰 낙이던 시절이 있었다. 1977년 WBA 주니어 페더급 세계챔피언 경기에서 4전 5기 신화를 썼던 홍수환 선수의 경기에는 온 국민이 열광했다. 그날 하루 27회 재방송을 내보냈다니 말 다했다. 이후에도 장정구, 유제두, 유명우 등 프로복싱 강국의 위신을 세운 이름들이 중장년 세대의 기억 한 켠에 남아있다, 궁핍한 환경을 이겨낸 복싱영웅들은 당시 ‘헝그리 정신’을 자녀에게 주입하는데도 유용한 모델이 됐다.

 ▷프로야구와 축구에 밀려난 권투에 대한 관심이 반짝 되살아났다. 27일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코너 맥그리거의 시합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12.9%)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한 ‘세기의 대결’ 덕에 두 선수 모두 돈방석에 올랐다. 10라운드 경기시간을 총수입으로 나누면 메이웨더는 1초에 2억여 원, 맥그리거는 6700만 원을 챙겼단다.

 ▷걸핏하면 탁자 위에 달러뭉치를 깔아놓은 돈자랑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메이웨더의 별명은 ‘머니(money 돈)’, 격투기계의 악동인 맥그리거의 별명은 ’노토리어스‘(notorious 악명 높은)다. 격투기 선수에게 이겨 ’50전 전승‘의 기록을 세운 메이웨더에 대해 복싱의 수치라는 뒷말이 분분하다. 난생 처음 권투시합에 나온 맥그리거는 총 170회 펀치를 맞았지만 막대한 맷값과 더불어 할리우드 러브콜을 받는 등 몸값이 치솟았다. 권투를 ‘자신과의 싸움’ ‘몸으로 승부하는 정직한 운동’으로 바라보던 낭만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사각의 링은 천문학적 돈이 춤추는 엔터테인먼트 무대로 전락한 듯 하다.



고 미 석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