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7월 미서 환수 ‘문정왕후 어보’ 원품 맞다

7월 미서 환수 ‘문정왕후 어보’ 원품 맞다

Posted August. 28, 2017 08:11   

Updated August. 28, 2017 09:08

中文
 최근 미국에서 환수한 덕종 어보가 일제강점기 모조품인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문정왕후 어보(상존호 금보·上尊號 金寶)’의 제작 시기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올 7월 환수한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가 화재로 인해 1554년(명종 9년)에 다시 제작한 어보라는 문화재청 주장은 잘못됐다”며 “명종실록을 살펴보면 해당 어보는 1547년(명종 2년)에 만들어진 원품이 맞다”고 27일 주장했다.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는 총 3개의 어보를 받았다. 1547년 1월에 만들어진 ‘상존호 금보’와 그해 9월 제작된 ‘가상존호(加上尊號) 금보’, 1565년에 만들어진 ‘상시호(上諡號) 금보’가 그것이다. 이 중 7월에 환수한 상존호 금보를 제외한 나머지 2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이미 보관돼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1553년 화재로 문정왕후의 침전에 보관돼 있던 어보가 불에 타 이듬해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고궁박물관은 “통상 어보는 왕이나 대비 생전에는 한꺼번에 침전에 보관하기 때문에 둘 다 불에 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명종실록의 해당 기록도 그렇게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명종실록에는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가 탔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며 재제작품이 아닌 원품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논쟁의 초점은 명종실록 16권 9년 6월 7일자 기록이다. “성렬인명대왕대비(聖烈仁明大王大妃)와 공의왕대비(恭懿王大妃)의 보(寶), 옥책(玉冊), 교명(敎命), 인(印)을 완성해 바쳤다. 전년 가을 경복궁 화재 때 보, 옥책, 교명, 인이 모두 타버려 다시 만들 것을 명했는데 이때 완성했다(聖烈仁明大王大妃 恭懿王大妃寶 玉冊 敎命 印成 進之. 前年秋景福宮災 寶及玉冊 敎命 印 皆火 故命改之 至是成)”는 내용이다.

 여기서 성렬인명대왕대비는 1547년 9월 제작된 ‘가상존호 금보’에 새겨진 문정왕후의 존호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상존호 금보’에 새긴 존호(성열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와 다르기 때문에 화재로 소실된 어보는 ‘가상존호 금보’이지 ‘상존호 금보’가 아니라는 게 문화재제자리찾기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실록에 적힌 ‘모두 탔다(皆火)’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며 “상존호 금보가 생략된 문장으로 이해하는 게 옳다”고 반박했다.

 학계는 명종실록 기록이 보는 시각에 따라 두 해석 모두 가능하다는 견해다. 한국고전번역원 관계자는 “문맥상으로 두 어보가 모두 탔다고 볼 수 있지만 어보에 새겨진 존호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걸 보면 ‘가상존호 금보’만 소실됐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