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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만큼 강력한 김정은의 선전선동

Posted August. 05, 2017 07:49   

Updated August. 05, 20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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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이후 각종 미사일 발사장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4일에는 위험한 발사장 주변을 담배를 물고 다니는가 하면, 지난달 28일에는 자강도 무평리 인근에서 한밤중에 하늘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김정은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묘

사되는 고도의 이미지 정치는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당시 사진엔 김정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그나마 한참 지난 후 한두 장 공개됐을 뿐이다. 수십 장의 현장 사진이 발사 직후 공개되고 24시간 이내에 동영상이 공개되는 김정은의 ‘미사일 노출증’은 주민들에게 권력의 크기를 증명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는 공포감을 주려는 심리전이다.

 김정은은 성공한 미사일 발사 사진 및 동영상에만 등장한다. 흰 옷을 입어 시선을 끌거나 포옹과 참관 등 주인공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연출한다. 미사일 발사 장면이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확인시키는 이벤트임을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의 얼굴 배지도 달지 않는다. 미사일 발사 성공을 자신의 독자적 치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집권 후 김정은은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인민들에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게 김일성과 비슷하다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새롭게 건설되는 건물을 보여주고 창고에 가득 찬 냉동 생선들을 보여주었다. 먹고 자는 문제와 관련해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한계에 달하자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 이벤트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시끌벅적하게 미사일 발사 행사를 벌이는 것은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자신이 세습받은 권력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북한 ICBM 사진 속 3대 비밀을 정리해 보았다.

지구촌 안방까지 날아오는 김정은의 미사일

 우상화에서 이미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보다 훨씬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연쇄적인 미사일 발사 장면 공개와 추후의 기념사진 촬영 등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권력 정당화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이다. 이미지는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북한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들이 있지만 이들이 미사일 발사 현장에 접근해 직접 취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외국의 카메라는 차단된 채 국가에 소속된 영상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국제사회의 미디어에 배포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국 언론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북한이 쏜 미사일은 동해로 떨어지지만 미사일 사진은 국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안방으로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북한에서 쏜 미상의 발사체가 동해를 향해 날아간 것이 한미일 레이더에 포착된다. 하지만 발사체의 제원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잠시 후 북한은 중대 발표를 두 시간 후쯤 하겠다고 예고한다. 전 세계 기자들이 위성을 통해 전송되는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중대 발표를 기다린다.

 이어 북한 아나운서가 하이톤 목소리로 “북한이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김정은이 기뻐했고 사람들이 기뻐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단순한 팩트에 비해 현란한 이미지가 덧붙으면서 뉴스는 커진다. 전쟁을 연상시키는 무기와 화염은 상업 미디어의 중요한 관심 사항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북한이 화성-14형을 1차 발사하고 같은 달 28일 2차 발사했을 때도 같은 패턴이었다. 북한은 발사 날짜를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6·25전쟁 정전기념일 다음 날로 택해 뉴스 밸류를 높였다.

잘 계획된 현란한 동선과 앵글

 김정은은 외부 세계가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화성-14형 미사일 2차 발사가 임박했다는 서방 세계의 분석이 나온 지난달 26일, 북한은 평안북도로 가는 승용차 행렬을 연출함으로써 외부 시선을 유도하는 한편 그 다음 날 바로 6·25 전사자 묘역이 있는 평양에서 행사를 함으로써 도발이 없을 것으로 안심시키는 노련함을 보였다.

 북한의 영상 기술과 미디어 기술은 앞서가는 미국 등 자유주의 국가와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선전선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당연한 능력이기도 하다. 사진 기술과 당성을 검증받은 사람들이 전속촬영팀을 구성해 김정은의 일정을 촬영한다. 노련하고 잘 훈련된 이미지 기획자들이 연출하고 경험 많은 영상 전문가들이 촬영해 외부로 배포하고 있다. 나로호 발사를 찍어봤던 한국 사진기자들 대부분은 야간에 빠른 속도의 발사체를 정확하게 포커스 맞춰 찍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수면 위로 나오는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도 촬영팀의 전문성을 잘 보여준다.

 화성-14형 2차 발사 때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화면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았다. 화면 속 나무의 위치와 발사체의 각도 등으로 추정할 때 북한 당국은 최소 5군데 이상의 촬영 포인트에 촬영가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발사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가설물을 설치해 위험을 무릅쓰고 근접 촬영하는 과감함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자리에서 촬영된 화면을 편집해 2분 남짓한 동영상 파일을 최종적으로 만든 후 외부에 전달했다.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발사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동영상의 분량은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매스미디어들이 뉴스를 제작하는 데 충분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NHK가 화성-14형 미사일이 홋카이도 부근에 낙하하는 모습을 희미하게 포착하는 특종을 하긴 했지만 이를 인용한 언론사는 극히 드물었다. 북한이 제공하는 화면으로 뉴스를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한 사람을 위한 드라마

 미사일 발사 행사는 김정은 한 사람을 위한 드라마다. 일반적으로 북한은 기념사진 형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공평하게 노출되는 방식을 택했지만 지금은 김정은의 ‘원맨쇼’가 펼쳐진다. 주인공인 김정은이 늙은 군인과 과학자를 안아준다. 그들은 옆에서 공손한 모습으로 화면을 구성해 준다.

 미사일 발사 사진을 정교하게 촬영할 뿐만 아니라 미사일 발사 전후의 일들로 미사일 발사라는 이벤트를 축제로 만드는 연출까지 함으로써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벤트 현장에 김정은이 직접 출현해서 뉴스의 가치를 높이고 발사가 끝난 후 대규모 연회와 불꽃축제를 이용해 페스티벌로 만들고 있다. 발사 이미지가 없다면, 지도자가 현장을 얼쩡거리는 사진이 없다면,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군인들이나 축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없다면 뉴스는 작아질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양 시내에는 야외 전광판을 설치해 뉴스를 보는 시민들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2014년경부터 북한 평양역 앞을 비롯한 도심에 대형 전광판이 설치됐다. 그 후 북한 당국의 중대 발표나 월드컵 축구 경기 등을 북한 인민들이 지켜보는 모습의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서울이나 도쿄에서 시민들이 거리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행보에 크게 관심을 갖고 찬성한다는 느낌을 표현한다. 미사일이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김정일 사망 소식 보도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리춘희 아나운서가 중대 발표를 하는 모습이 전광판에 뜨고 시민들 수십 명이 시청한다.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AP와 CNN, 교도통신 사진기자들도 촬영할 수 있다. 북한이 촬영한 사진에서는 수십 명의 주민이 동시에 양손을 들어 환호하지만 외신 소속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에선 담담하게 시청하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변영욱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