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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공연마다 커튼콜 받는 ‘한국의 장발장’

日공연마다 커튼콜 받는 ‘한국의 장발장’

Posted July. 03, 2017 07:55   

Updated July. 03, 201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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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최고였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졌어.”

 지난달 9일 밤 일본 도쿄(東京) 데이코쿠(帝國) 극장.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관람한 여성 관객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주인공 장발장 역을 맡은 배우 양준모 씨(37)가 감격어린 표정으로 인사를 하러 나오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립박수를 포함한 커튼콜은 여섯 번이나 이어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 극장에선 5월부터 레미제라블 30주년 기념공연이 열리고 있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중 하나인 레미제라블은 1987년 일본 초연 이후 지금까지 3100회 넘게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도 전회 전석 매진이다.

 지난달 28일 극장에서 기자와 만난 양 씨는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게 얼마 만이냐”며 반가워했다. 이어 “같이 공연하는 일본 배우 중에는 어렸을 때 레미제라블을 보고 배우가 된 사람이 많다”며 “나 역시 장발장 역을 하면서 십수 년 동안 이 역을 맡기 위해 연기를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19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장발장을 통해 죄와 구원, 혁명과 사랑, 인간애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는 작품 속 ‘민중의 노래’가 널리 불리기도 했다. 레미제라블을 ‘인생의 작품’으로 꼽는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힘이 있는 작품”이라며 “30주년 기념 공연에 서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양 씨가 일본 공연에서 장발장 역을 맡은 것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에서 ‘오페라의 유령’ ‘영웅’ 등에 출연하며 스타가 된 그는 우연히 오디션 기회를 얻고 장발장 역에 발탁됐다. 일본 기획사의 작품에, 일본어를 전혀 못하던 양 씨가 주인공으로 발탁된 것은 그만큼 그의 노래와 연기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일본에 가기 전 6개월 동안 매일 북한산을 걸으며 노래를 연습했다”며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첫 연습 때 이미 대사를 다 외우고 발음까지 고쳐서 갔다”고 돌이켰다.

 일본에서 그는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0년 동안 줄곧 공연을 지켜본 팬이 “당신 덕분에 작품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고 감격했을 정도다. 그는 “직접 경험한 신앙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일본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다 보니 배우들이 성경을 쥐는 방법, 성호를 긋는 방법을 묻더라”며 웃었다.

 2015년은 한일관계가 한창 악화됐을 때였다. 양 씨는 “그럴수록 흠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했고, 동료 배우들에게도 겸손하게 다가갔다. 결국 진심은 통하더라”고 말했다. 또 “‘나는 한국은 좋아하지 않지만 양준모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다’는 관람 후기를 읽고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연기에 감동한 일본 팬들은 지난해 양 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단체로 한국까지 오기도 했다.

 양 씨는 일본에서의 호평을 바탕으로 지난해는 한국에서도 장발장 역을 했다. 요청이 온다면 2019년 일본 공연에도 출연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저와 맞는 작품을 만나면 아무리 오래 공연을 해도 힘들지 않다”며 “(3년째 장발장 역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양 씨는 “낮 공연에는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처음 보는 한국인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고 강조했다.



장원재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