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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상한제의 유혹

Posted June. 17, 2017 07:26   

Updated June. 17, 201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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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든 영화가 건축학개론이었다. 수지가 연기한 서연은 서울 정릉 친척집에 얹혀살다 강남 개포동 반지하방으로 이사한다. 서연이 15년 뒤 나타나 건축가가 된 주인공 승민에게 집을 지어 달라고 한 곳이 제주였다. 제주에는 연세(年貰)가 있다.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1년 단위 임대제도다. 제주에서는 이 연세를 목돈이 죽어 없어진다며 ‘죽어지는 세’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제도가 다른 한 사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결혼 뒤 6번 이사해 11년 만에 경기도에 작은 집을 마련했고 아직도 융자금을 갚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삼켰다”고 말할 정도니 세입자의 설움을 잘 알 듯하다. 그가 추진하겠다는 정책이 ‘임대료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제’다. 두 가지 제도는 전부터 민주당이 집세가 급등할 때면 꺼내든 카드였다.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적극 동조한다.

 ▷임대료를 억지로 누르면 규제 이전에 집세가 크게 오르거나 집주인이 수리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셋집이 줄어든다는 외국의 실증 연구 결과를 김경환 서강대 교수가 제시한 적이 있다. 영국은 1910년부터 임대료를 시장 평균 이하로 누른 데 이어 임대료 안정화 규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전체 가구 중 민간임대주택 거주비율이 90%에서 1980년대 말엔 10%로 졸아들었다. 미국에선 주택난을 해결하려면 민간의 주택 공급 확대와 저소득층을 위한 임차료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선 기존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별로 올리지 않지만 새 세입자가 들어올 땐 수리를 해 세를 크게 올려 받는다. 일본에선 주인이 ‘정당한 사유’를 대야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우리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주인이 비우라는 말을 제때 하지 않으면 기존 임대차계약이 2년 자동 연장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임대료 직접 규제는 유럽이나 미국이 주택 사정이 나빴을 때 도입했다가 없앤 과거의 유물이다. 의도가 선한 정책이라면 꼭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김 후보자가 빨리 깨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