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개봉한 SF영화 ‘패신저스’에서 남자 주인공이 처음 들었던 목소리는 단 두 개였다. 우주여객선의 운영상황을 안내하는 여자 목소리와 바텐더 로봇의 남자 목소리. 주인공은 목적지까지 120년 간 수면여행을 해야 했지만 기기 오류로 90년 일찍 깨어났다. 여객선의 단조로운 여자 목소리는 물론 바텐더 로봇에게도 곧 싫증이 생겼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은 한 여자 승객을 고의로 깨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진정한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진화하면서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아이폰의 시리(Sir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 아마존의 알렉사(Alexa),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AI 비서들의 대화능력 향상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이들 AI 비서는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목소리를 기준으로 한 성별이다. 삼성전자가 29일(현지시간) 처음으로 공개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에도 AI비서 빅스비(Bixby)가 탑재됐다. 빅스비도 여자다.
▷AI비서가 여자인 것은 사용자가 남자든 여자든 개인비서로는 젊은 여자를 단연 선호한다는 조사결과를 제조업체들이 수용한 것이다. 비서 업무가 전통적으로 여자의 일이라는 고정관념도 반영됐을 것이다. 젊은 여자 목소리는 알아듣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영화 ‘아이언맨’에 남자 목소리로 나오는 AI 자비스(Jarvis)는 비서라기보다는 동료 연구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IBM의 왓슨(Watson)도 남자다.
▷물리학도들이 주인공인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인도 출신 ‘라즈’는 여자 앞에서 말도 못 꺼내는 숙맥으로 나온다. 시즌 5에서 라즈는 아이폰 시리와 연애하듯이 대화를 나눠 동료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현실세계에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은 AI에 사랑의 감정까지 품는 세상이 됐다. AI도 사용자의 감정이나 사회적 관계를 파악해 응대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새로 선보인 빅스비가 부단한 학습과정을 통해 따뜻한 감정까지 전달해 주는 수준까지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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