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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사

Posted March. 07, 2017 07:05   

Updated March. 07, 201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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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05년 작고한 이형기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낙화’의 첫머리다. 청년 시절 시 전문은 모른 채 이 구절만 주워듣고 종종 읊조렸던 기억이 있다. ‘떠날 때가 되면 주저 없이 돌아서겠다’는 다짐은 혈기 왕성할 땐 누구나 했을 것이다. 나이 먹으며 집착과 후회가 늘어나다 보면 제때 멋있게 떠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이임식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떠나는 게 이별”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장·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은 처음 마음먹은 대로 일을 마무리 짓고 떠나기가 쉽지 않다. 미련이 없을 수 없다. 이임사에서 그 일단(一端)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저 성실하고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감사하겠다.” 김황식 전 총리가 남긴 이임사 한 대목이다. 김 전 총리의 담백한 인사말은 원망도, 주문도 없어 역설적으로 더 눈길을 끌었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4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은은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화려하지 않아도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에 이렇게 멋진 은퇴사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먹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이 악물고 참아가며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성숙함은 단지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고위 공직자든, 운동선수든 앞으로도 수많은 이임사나 은퇴사를 내놓을 것이다. 직원들과 팬, 가족에게 감사하고 후진을 위해 작으나마 할 일을 찾겠다는 훈훈한 내용으로만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논어에 ‘후생가외(後生可畏) 언지래자지불여금야(焉知來者之不如今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배가 두렵다. 어떻게 장래의 그들이 오늘의 우리만 못할 줄로 아는가’라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서른 살 아래인 안연(顔淵)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 울림과 품격 있는 은퇴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접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