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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하고 사려 깊은 김병로

Posted December. 07, 2018 07:36   

Updated December. 07, 201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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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20세 때 김동신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순창의 일본인 관청을 습격한 항일투사이다. “일정의 박해를 받아 비참한 질곡에 신음하는 동포를 위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변호사가 되었고 수많은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로 변론했다. 주도하던 신간회가 해체되고 사상사건의 변론에서도 제한을 받게 되자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광복될 때까지 13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대법원장 재임 9년 3개월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퇴임 후에는 독재에 맞서 싸웠다.

 김병로 글씨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크기와 넓은 행의 간격이다. 작은 글씨는 매우 치밀함, 신중함, 현실감각, 냉정한 억제력, 주의력, 경계심, 근신, 겸손, 절제를 의미한다. 넓은 행 간격은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함, 조심스러움, 사려 깊음, 절약 등을 뜻한다. 이처럼 선생은 사려가 깊고 신중하며 절제할 줄 알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했으며 과시욕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필선이 부드럽고 필압이 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인품이 훌륭하고 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규칙적인 글씨는 논리적이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음 마지막 부분의 삐침은 강한 인내력을 뜻한다. 선생은 사법권 독립을 위해서는 이승만과의 마찰도 불사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직후 대법관들에게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인 것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선생에게 있어서 사법권과 재판의 독립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 명제였다. 평생 절개를 지킨 삶의 궤적은 후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