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내가 전쟁을 막아 수백만을 구했다”

Posted October. 04, 2018 07:31   

Updated October. 04, 2018 07:31

中文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개월째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내가 한국의 전쟁을 막았다”는 자화자찬이다. 과연 팩트에 근거한 걸까.

 트럼프는 “내가 취임할 때는 오바마가 방아쇠를 당겨 전쟁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여러 군사적 옵션을 검토했지만 한국이 감수할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의 외교전문가도 필자에게 “미국은 어떤 안보 이슈든 대화부터 군사행동까지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그야말로 검토일 뿐 오바마 정부가 진지하게 군사행동 쪽으로 기운 적은 없다”고 전했다.

 기사검색 시스템 KINDS에 ‘전쟁 북한 핵 미국 선제타격’을 검색어로 돌려봤다. 트럼프 당선일인 2016년 11월 8일을 기점으로 그 이전 8년간은 256건이 떴는데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 1개월 사이에는 706건이 쏟아졌다.

 사실 북폭은 트럼프 취임 전에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였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미국이 자국민 수십만이 보복공격 사정권 내에 있는데 전쟁을 강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흔히들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북폭 하려 했다고 하지만 이는 과장됐다. 필자는 영변 폭격 계획 책임자였던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북핵특사를 2006년, 2007년 만나거나 인터뷰했다. 요지는 클린턴이 1993년부터 6개월가량 폭격 계획을 검토했고 전쟁 대비를 명령했지만 실제 실행을 결정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준비는 충분히 했지만 선호한 코스는 아니었고 결국은 채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북폭이 임박해 미국인을 다 소개 시키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 정부 때 의전수석과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씨는 최근 기고에서 “미 대사관이 유사시 미군 가족을 소개시키기 위한 계획안을 일상적으로 점검하는 안내서를 외교안보수석이 입수해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비서실장이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외교수석의 메모를 본 김 대통령이 다음 날 클린턴에게 전화해 전쟁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전쟁위기론은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급피치를 올리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미 역사상 가장 불가예측한 인물이기 때문에 고조된 것이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포함한 제반 구조적 여건이 불가피하게 전쟁 쪽으로 기운 적은 없었다.

 위기를 야기한 당사자가 자기 덕분에 위험이 없어졌다고 고마워하라고 하는 행태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전쟁 대(對) 평화’ 프레임이 과장되게 설정돼 비핵화라는 본질을 흐리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가 추진하는 것은 전쟁의 대체물로 선택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면 자신이 밀어붙이는 방향에 대한 비판을 ‘그럼 전쟁을 원하냐’고 몰아붙일 수 있게 된다. 과거 극우세력이 ‘적화냐, 안보냐’고 했던 것과 방향은 정반대지만 특성은 비슷한 프레임 짜기다.

 그렇게 해서 누가 정치적 이득을 보든 말든 중요한 건 비핵화의 실현이다. 그런데 현 진행방향은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조용히 핵 보유국을 향해 가는 궤도일 수도 있어 걱정된다. 김정은은 그동안 면전에 대고 도발하는 전략을 취해왔으나 올 들어서는 핵연료는 계속 생산하면서도 순한 양 같은 행보다. 파키스탄도 1998년 핵실험으로 엄청난 핵 포기 압력을 받았지만 그 뒤 20년간 조용히 지내왔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기홍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