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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판 분서갱유

Posted June. 06, 2018 07:51   

Updated June. 06, 201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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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에서는 정치색이 강한 책 등을 다루는 독립서점을 ‘이루(二樓·2층)서점’이라고 부른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금서(禁書)로 분류된 책들이 홍콩에서 유통됐다. 이루서점은 당시 금서를 팔던 작은 서점들이 주로 건물 2층 이상에서 몰래 영업한 데서 유래했다. 최근 중국 당국이 홍콩 서점을 반중(反中) ‘불온서적’을 퍼뜨리는 소굴로 보고 유통망을 점령했다. 중국 정부기관인 홍콩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은 홍콩 내 대형서점 체인을 포함해 서점 53곳과 출판사 30곳을 거느린 홍콩 연합출판집단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홍콩판 분서갱유(焚書坑儒)에는 전조가 있었다. 2015년 일명 ‘서점 관계자 실종 미스테리’다. ‘시진핑의 연인들’ ‘시진핑 20년 집권의 꿈’ 등 중국 당국이 껄끄러워할 책을 팔던 이루서점 ‘통로완(銅?灣) 서점’의 점장과 직원 등 5명이 차례로 실종된 사건이다. 이들은 중국 공안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후일 드러났다.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 원칙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홍콩의 동거는 순항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 부상이 두드러지며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 당국의 간섭과 통제도 노골화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근대화에 뒤쳐져 서구 열강에 영토마저 떼 줘야 했던 고난을 극복하고 중국몽(夢)을 실현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홍콩을 중화민족 부흥을 알릴 이정표적 공간으로 삼은 그에겐 당연한 수순이다.

 ▷홍콩의 빛나던 시절을 기억하는 홍콩인들은 시 주석의 ‘중국 일체화’ 전략에 위기감이 상당하다. 동·서양이 교차하던 홍콩이 독특한 정체성을 잃는 게 못내 아쉬운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2014년 홍콩의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에 동조해 중국판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 저우룬파, 량차오웨이, 류더화 등을 중국 자본이 투자하는 영화에서 볼 수 없게 된 아시아의 수많은 ‘홍콩영화 키즈’들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