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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7시간

Posted March. 30, 2018 08:05   

Updated March. 30, 20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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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하필 그날의 앞두고 드러난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은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 씨와 청와대 관저에서 만나 안봉근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다. 청와대 참모들을 제쳐놓고 비선(秘線)인 최 씨와 집사 격인 사람들과 국가적 참사 대책을 논의한 것이다.

 ▷사고 당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일자 박 전 대통령이 거짓으로 일관했던 것 역시 최순실의 존재를 감추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 당일 대통령의 최초 지시는 당시 청와대 발표보다 7분 늦은 오전 10시 22분이다.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라는 세월호 희생자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의 발송시간이자 구조의 골든타임이던 오전 10시17분에 앞서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변명하기 위해 시간까지 조작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는 무당으로부터 날짜를 점지 받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궁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당을 ‘진실한 영혼’이란 뜻의 진령군(眞靈君)으로 봉했다. 몸이 아플 때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명성황후에게 조언을 하던 진령군의 세도는 구한말 조선(朝鮮)을 흔들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던 사간원 정언 안효제는 진령군을 통렬히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귀양까지 갔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고언(苦言)을 해줄 충신조차 없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사고 당일 대통령이 관저에 머문 게 논란이 되자 “아침에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출근’했다면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전화는 받았어야 했다. 쓴 소리 대신 연락조차 되지 않는 대통령이 ‘관저 침실에서 근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참모만이 옆에 있던 것은 대통령은 물론 국가의 불운이다.


정세진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