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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고 소외계층 돌본 ‘한국 치즈의 아버지’

목발 짚고 소외계층 돌본 ‘한국 치즈의 아버지’

Posted April. 15, 2019 08:22   

Updated April. 15, 20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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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임실을 대한민국 치즈 발상지로 만든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번스·사진) 신부가 선종(善終)했다. 14일 천주교 전주교구에 따르면 지병으로 전주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지 신부가 전날 오전 10시경 영면했다. 향년 88세.

 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1958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와 1964년 주임신부로 임실성당을 찾았다. 그는 가난한 농민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산양 2마리를 길러 치즈 만들기에 나섰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러 고국에 간 그는 치즈 장인에게 배운 기술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 돌아왔다. 그리고 맛과 향이 균일한 임실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서울로 가서 외국인이 많이 찾는 호텔과 레스토랑 등을 돌며 임실치즈를 알리며 판로 개척도 스스로 했다.

 수요가 늘며 산양유로는 물량을 맞출 수 없자 젖소를 키워 생산량을 늘렸다. 임실이 한국 치즈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은 순간이다. 지 신부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민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권한을 물려줬다.

 1970년대 초반 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아 하체의 기능을 서서히 잃어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전주와 완주 복지시설을 오가며 소외계층을 돌봤다.

 법무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2016년 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심민 임실군수는 14일 “신부님의 뜻을 받들어 임실치즈가 세계로 퍼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전주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전주중앙성당에 마련됐다. 16일 오전 10시 장례미사가 열린다. 장지는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전주=박영민기자 minpr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