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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로 추적한 교향곡 탄생기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로 추적한 교향곡 탄생기

Posted February. 16, 2019 07:39   

Updated February. 16, 201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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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거대한 혼란의 음형(音型)이 울려 퍼진 뒤 1악장의 주요 주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주제는 거부하는 듯한 저음 현악기의 선율에 밀려 사라진다. 이어 2악장, 3악장의 주제들도 차례로 ‘거절된다’. 앞 악장의 주제들이 어떤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물러난다는 느낌이 또렷하다. 작곡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베토벤이 남긴 이 작품의 스케치를 보면 모든 것이 확연해진다. 초안에서는 저음현 대신 바리톤 독창이 ‘가사’를 가진 노래로 각 악장의 주제에 응답한다. 1악장 주제가 나온 뒤, 바리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보다 더 밝은 것’이라며 퇴짜를 놓는다. 2악장 주제 다음엔 ‘생기가 더 있을 뿐 더 낫지는 않소’, 3악장 아다지오 선율 뒤엔 ‘너무 달콤하오, 더 활기찬 것이 필요하오’라고 선언한다.

 베토벤이 남긴 아홉 곡의 교향곡을 분석하고 해설한 책은 여럿이다. 이 책이 탁월한 부분은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들을 추적해 각각의 곡이 착상되고 발전되며 최종 결과물로 탄생되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점이다.

 교향곡 3번 ‘영웅’의 경우 우리는 힘차게 두 번 울리는 E플랫장조 화음과 함께 빠르고 당당한 3박자로 이 곡을 맞이한다. 그러나 초안에는 느린 4박자 도입부가 있었다. 이 부분을 떼어버리면서 이 작품은 앞의 두 교향곡과 전혀 다른 면모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이 각 교향곡의 성립 과정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5번 교향곡은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비서 신들러의 전언이 의심을 받으면서 이 제목은 잊혀져 왔다.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운명의 목을 꽉 움켜쥐겠다’고 쓴 베토벤의 편지를 인용하며 신들러의 전언에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6번 ‘전원’ 교향곡 작업 즈음에 지인들에게 거듭 밝힌 자연에의 찬미는 이 ‘음악 성자’의 내면을 한층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인 음악 애호가보다는 베토벤을 한층 구조적 분석적으로 이해하고픈 열광적 애호가부터 그의 작품을 연주하려 준비하는 음악인들에게 더 도움이 될 한 권이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