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의 전쟁… 고통받는 단속원[현장에서/구특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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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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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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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특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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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다 냈는데 ××. 돈 떼어 가는 게 어디 있어?”

10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6번 출구 앞. 이 일대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된 한 남성이 금연 단속원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과태료 10만 원을 내셔야 한다”는 여성 단속원의 설명에 이 남성은 욕설과 반말을 쏟아냈다. 자리를 뜨면서는 단속원을 향해 과태료 고지서를 집어 던졌다. 이 남성은 임신부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역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흡연하다 적발됐다. 이 일대 금연거리 바닥 곳곳엔 ‘금연’ 표시가 돼 있었다.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도 나왔다.

금연 단속원들은 서울시 소속 기간제 공무원이다. 서울시에는 110여 명의 단속원이 있다. 단속원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금연거리를 주로 순찰한다.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주변 등 학부모들의 요청이 많은 곳도 집중 순찰지역이다. 기자는 10일 하루 동안 흡연 단속 현장(사진)을 지켜봤다. 단속원들은 흡연자들의 폭언과 반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니가 담배 사줬냐”고 따지거나 “차라리 담배를 팔지를 마라, ×××들아”라고 욕설을 해대는 흡연자들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금연 단속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전자담배다. 전자담배의 판매량이 빠르게 늘어 적발 건수의 약 20%가 전자담배라고 한다. 전자담배는 흡연자가 손에 들고만 있을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입으로 연기를 내뿜는 순간을 영상으로 촬영해야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흡연자들은 단속원을 보면 전자담배를 호주머니 안으로 슬그머니 집어넣는다. 니코틴 성분이 없다며 단속원 앞에서 대놓고 흡연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금연 단속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속원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다. 단속에 적발된 흡연자들은 신분증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단속원이 다가오면 아예 달아나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10일 한 단속원이 초등학교 앞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남성을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흡연자는 곧바로 달아나버렸다. 금연 단속원에게는 교통 단속 경찰처럼 법 위반자에게 신분증 제출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적발된 흡연자들은 “재떨이부터 놔달라”며 불만을 내비친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흡연장소는 만들어 놓지 않고 단속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흡연자들의 이런 하소연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반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단속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자세는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단속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이다.

“흡연자들로부터 욕설과 반말을 들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년퇴직 후 지난해부터 금연 단속원 일을 시작한 박모 씨(61)의 말이다. 박 씨와 같은 단속원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구특교 사회부 기자 kootg@donga.com

#담배#금연 단속원#금연구역#흡연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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