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만의 해석 담은 럭셔리 SUV의 등장[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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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Car]
75년 만의 첫 4도어 모델
좌석-차체 실용성 높였지만 스포츠카 정체성은 그대로
V12 가솔린 엔진 장착… 역동적인 주행 능력 자랑
능동제어 서스펜션 적용… 안정적인 승차감 제공

앞쪽이 긴 스포츠카의 비례를 보여주는 차체는 공기역학적으로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페라리 제공
앞쪽이 긴 스포츠카의 비례를 보여주는 차체는 공기역학적으로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페라리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13일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가 새 모델을 공개했다. 이름은 푸로산게(Purosangue). 순종 또는 종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엠블럼 속 도약하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차의 성격에 비추어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중에 뚜렷하게 새기려는 의도도 있다. 언뜻 브랜드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만큼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푸로산게는 75년 페라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4도어 모델이다. 페라리는 이전까지 4인승 차는 많이 만들어 왔다. 그러나 뒷좌석에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뒤 도어를 단 모델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좀 더 넉넉한 뒷좌석 공간과 적재공간을 갖추고, 비포장 도로 등 험한 길을 문제 없이 달릴 수 있도록 차체를 높였다. 이 같은 개념은 흔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이 푸로산게를 SUV 범주에 넣기도 한다. 즉 일반적인 관념에서 본다면 푸로산게는 페라리의 첫 SUV인 셈이다.

그래서 75년간 스포츠카 만들기에 매진해온 페라리가 판매와 수익성을 우선해 SUV 장르에까지 손을 댔다는 비난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페라리는 푸로산게를 SUV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용성을 고려한 설계를 페라리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페라리 유틸리티 비클’이라고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주장이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여느 럭셔리 브랜드나 고성능 브랜드의 SUV들과 뚜렷하게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쪽에 놓인 V12 엔진은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페라리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앞쪽에 놓인 V12 엔진은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페라리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푸로산게는 동력계와 구동계, 뼈대와 디자인 등 모든 면에 페라리 스포츠카 고유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우선 강력한 성능의 근원인 심장은 V12 6.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다. 갈수록 강화되는 배출가스 및 소음 규제 때문에, 스포츠카 브랜드들조차 차츰 V12 엔진을 퇴출시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엔진 선택부터 이례적이다. 전통적으로 페라리 최상위 고성능 차들에 써온 V12 엔진을 씀으로써 정통성에 대한 이견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엔진의 힘을 바퀴로 전달하는 구동계 구성 역시 흥미롭다. 엔진을 앞 차축 뒤에 배치하는 프런트 미드 엔진 배치와 무게가 많이 나가는 변속기를 뒤 차축에 설치한 트랜스액슬 구조가 구동계 구성의 핵심이다. 이는 무게중심이 최대한 차체 중심에 가깝게 놓이도록 만들어, 역동적인 주행 특성의 바탕이 된다. 또한 FF와 GTC4루소를 통해 먼저 선보인 페라리 고유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다.

승차감과 핸들링, 주행 안정성을 좌우하는 서스펜션에는 세계 최초 기술을 담았다. 이 새 기술의 이름은 페라리 액티브 서스펜션 테크놀로지로, 머리글자가 빠르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패스트(FAST)’라는 점이 재미있다. 각종 주행 장치의 작동 상태와 차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서스펜션을 조절하는 능동 제어 기술이다. 특히 페라리는 서스펜션 제어에 전기 모터를 활용함으로써 더 빠르고 정확하게 서스펜션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능동 제어 서스펜션보다 크기는 작고 무게는 가벼워 스포츠카에 걸맞은 주행 특성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 페라리의 주장이다.

차체 위쪽과 아래쪽 요소의 비율을 세심하게 고려한 디자인으로 날렵한 분위기가 난다.
차체 위쪽과 아래쪽 요소의 비율을 세심하게 고려한 디자인으로 날렵한 분위기가 난다.
기술적인 특별함보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역시 높아진 실용성이다. 푸로산게에는 럭셔리 차들에서 볼 수 있는 뒷좌석 중심의 코치 도어가 달려 있다. 코치 도어는 도어 경첩이 앞 도어는 앞쪽에, 뒤 도어는 뒤쪽에 달려 문이 서로 마주보고 열리는 형태의 것을 말한다. 게다가 뒤 도어는 스위치를 이용해 열고 닫는 전동식이다. 차 밖에서 도어 앞쪽 유리창 턱에 달린 작은 스위치를 당기면 뒤 도어가 부드럽게 열리며 차에 탈 사람을 맞이한다. 이는 페라리가 푸로산게를 개발하면서 뒤 도어와 뒷좌석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뒷좌석은 역대 페라리 차들 가운데 가장 공간이 넉넉하고 꾸밈새가 화려하다. 다목적성에 초점을 맞춘 일반 SUV에 비하면 푸로산게의 뒷좌석이 조금 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페라리는 푸로산게에 탄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여유를 느끼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뒷좌석 크기와 디자인도 앞좌석과 거의 같을 뿐 아니라 전동 조절 기능을 더해 좌석 각도와 위치도 조절할 수 있다. 나아가 뒷좌석 사이에는 센터 콘솔을 마련해 터치 인터페이스로 뒷좌석용 공기조절 장치와 편의 기능을 조절할 수도 있다.

이처럼 뒷좌석을 중심으로 실용성을 높였음에도 여느 SUV들처럼 외모가 둔해 보이거나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은 디자인의 힘이다. 우선 프런트 미드 엔진 배치로 엔진을 최대한 뒤쪽으로 배치하면서 자연스레 차체 앞쪽이 긴 스포츠카의 비례가 갖춰졌다. 그리고 비포장 도로 주행을 고려해 바닥을 높였지만, 차체 위쪽과 아래쪽 간 비율을 세심하게 고려해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분위기가 나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공기역학적인 요소들은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차체 주변을 흐르는 공기 흐름이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럭셔리 승용차에 주로 쓰이는 코치 도어는 뒷좌석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럭셔리 승용차에 주로 쓰이는 코치 도어는 뒷좌석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으로 일부 자동차 애호가들은 페라리마저 수익성 높은 SUV를 만든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로 페라리보다 먼저 SUV 시장에 진출한 스포츠카 업체들은 대부분 SUV가 판매량의 절반이나 그 이상을 차지하고, 수익의 상당 부분을 SUV에서 내고 있다. 그러나 페라리는 푸로산게의 생산량을 전체의 20%가 넘지 않도록 조절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작정 SUV에 기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자동차의 동력계가 점차 전동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전통적 자동차 업체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전략이 필요하기도 하다. 페라리는 SF90 스트라달레나 296 등 하이브리드 동력계를 얹은 스포츠카들을 내놓은 데 이어 2025년을 목표로 첫 순수 전기차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앞서 다른 업체들이 그랬듯, 푸로산게를 통해 얻은 이익은 페라리가 미래 동력원을 갖춘 더 나은 스포츠카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래서 푸로산게의 데뷔는 이전과 미래를 가를 페라리 역사의 전환점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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