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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태훈]경계심 높여야 하는 ‘관급형’ 현금 복지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입력 2019-05-08 03:00:00 수정 2019-05-08 09: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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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복지 근로의욕 꺾고 경제에 부담… 도움 꼭 필요한 서민에 돌아가야 정의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따박따박 통장에 돈 넣어주고…, 세상에 이런 효자가 어디 있겠냐고 할머니들이 만나기만 하면 나라 칭찬을 한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용돈을 드렸더니 일부를 손자에게 내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매달 기초연금 25만 원이 들어와 용돈 사정이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더 쓰라며 돌려주신 것이다. 어머니 전언에 따르면 요즘 노인분들은 기초연금으로 얘기꽃을 피우면서 “오래 살다 보니 이리 좋은 일도 있네”라며 신기해하신다고 한다. “쓸데도 별로 없는 노인들 말고 젊은 애들한테 더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소득·재산 하위 70%에 해당하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다. 복지지출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우리 사회에는 필요한 정책이다.

기초연금을 반기는 노인분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공짜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이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세상에는 돈이 그만큼 귀하고 공돈을 얻기가 어렵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관급형 공돈’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현금 복지를 쏟아낸다. 아동수당, 아기수당, 청년수당, 청년 면접수당, 결혼장려금, 돌 축하금…. 지난해 지자체에 신설된 복지사업은 722건이고, 이 중 68%가 현금이나 지역에서 통용되는 상품권을 줬다. 지방에서는 지자체들이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인근 지자체와 과열 복지 경쟁까지 벌인다. 모두 명분이 있는 사업이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현금이 무분별하게 살포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현금을 나눠준 선진국들이 왜 그런 정책을 그만둘까를 곱씹어 보면 우리의 정책 방향에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핀란드는 지난 2년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조건 없이 매월 560유로를 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가 지난달 포기 선언을 했다.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면 실업자들이 직장을 더 열심히 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기본소득으로 최소한은 먹고살 만해진 사람들이 근로의욕을 잃어버려 실업률이 줄지 않았다. 공짜가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든 것이다.

세계 원유 매장량 1위로 1970년 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베네수엘라는 과도한 복지로 지금은 알거지가 됐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137만 %를 기록했고, 올해는 1000만 %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가가 얼마나 무섭게 오르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도중에도 메뉴 가격이 오를까.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식당에 가면 우선 음식값부터 계산한다. 나라 경제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은 1999년 대통령이 된 우고 차베스의 무상복지였다. 2000년대 원유 수출로 번 돈을 산업 기반 마련에 쓰지 않고 공짜 의료와 교육 등에 쏟아부었다.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부족한 복지재원을 마련하려고 돈을 마구 찍어내 경제를 완전히 거덜 냈다.

우리와 베네수엘라를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남미 최고 부국이 20년 만에 생지옥으로 변한 것은 최근 현금 복지를 크게 확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보편적 복지는 재벌 총수 자녀와 소외계층의 자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많이 나눠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복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은 늘 한정돼 있다. 여유 있는 사람들보다 도움이 꼭 필요한 서민층에 더 많은 복지가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의에 부합한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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